오일장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 한국 전통시장의 기원


오일장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 한국 전통시장의 기원

시골 장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그 마을은 3일에 장이 서고, 옆 마을은 8일에 선다"는 식의 설명이다. 어릴 때는 그냥 신기한 일정 정도로 여기고 넘어가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궁금해진다. 왜 하필 5일 간격일까. 누가 이런 방식을 처음 만들었을까.

오일장은 오늘날에도 전국 곳곳에 남아 있는, 한국 특유의 장보기 문화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이 자리 잡은 지금까지도 정해진 날짜에 장이 서는 방식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 리듬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면, 오늘날 남아 있는 오일장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오일장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 조선시대에 오일장이 어떻게 자리를 잡아갔는지, 그리고 왜 하필 닷새 간격으로 장이 돌아가게 됐는지 짚어본다. 지난 글에서 다룬 '시장'이라는 개념이 한국 땅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뿌리내렸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오일장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오일장(五日場)은 말 그대로 닷새마다 한 번씩 서는 장을 뜻한다. 조선 이전에도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물건을 주고받는 일은 있었지만, 정해진 날짜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이 전국적인 제도처럼 퍼진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지금처럼 일상적인 풍경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서 생겨난 임시방편에 가까웠다.

기록에 따르면 15세기 후반, 흉년이 잦았던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 백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럽게 물건을 교환하는 자리를 만들면서 오일장의 초기 형태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나라에서 정식으로 세운 시장이 아니라, 먹을 것이 부족한 백성들이 서로 남는 것과 필요한 것을 맞바꾸려고 스스로 모인 자리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위에서 만들어 내려준 제도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생겨난 생활의 지혜였던 셈이다.

관에서 금지했다가 인정하기까지

흥미로운 대목은 오일장이 처음부터 환영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정에서는 이런 자생적인 장이 늘어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농사에 힘써야 할 백성들이 장에 몰려다니며 본업을 소홀히 한다는 우려,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거래가 늘면 세금을 걷기도, 질서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진다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오일장을 단속하고 억누르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백성들의 생활 필요는 제도보다 힘이 셌다. 오일장은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금씩 다른 지역으로 번져 나갔다. 결국 16세기를 지나면서 조정도 현실을 받아들여 오일장을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로는 지역마다 정기시가 자리를 잡았고, 나라 살림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오일장은 점차 전국 각지의 익숙한 풍경으로 굳어졌다.

왜 하필 닷새 간격이었을까

오일장의 날짜 간격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 마을에서만 장사해서는 생계를 잇기 어려웠던 이동 상인들은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이때 이웃한 고을끼리 장날이 겹치면 상인도, 손님도 곤란해진다. 그래서 인접한 지역들은 서로 다른 날짜에 장을 열어, 상인이 하루씩 이동하며 여러 장을 순서대로 도는 동선을 만들었다.

닷새라는 간격은 한 지역 안에서 몇 개 고을이 돌아가며 장을 열기에 적당한 주기였다. 너무 자주 열리면 팔 물건도, 살 사람도 충분히 모이지 않았고, 너무 뜸하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제때 구하기 어려웠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닷새 간격이 상인의 이동 거리와 마을 사람들의 생활 리듬에 가장 알맞은 균형점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오일장을 지탱한 사람들, 보부상

오일장이 하나의 촘촘한 유통망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데는 보부상의 역할이 컸다. 보부상은 등에 짐을 지거나 봇짐을 메고 이 장에서 저 장으로 옮겨 다니며 물건을 팔던 상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단순히 물건만 나른 것이 아니라, 지역 간 소식을 전하고 각지의 물가와 사정을 이어주는 역할도 함께 했다.

보부상들은 오일장의 순환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나름의 경로를 갖고 있었다. 오늘은 이 고을 장, 내일은 저 고을 장을 거치는 식으로 며칠간의 동선을 미리 짜 두었고, 이 흐름이 자연스럽게 지역과 지역을 잇는 물자 이동의 뼈대가 되었다. 오일장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자리를 넘어, 전국을 잇는 생활 유통망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보부상의 발걸음이 있었다.

마무리

오일장은 처음부터 잘 짜인 제도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흉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백성들의 자생적인 교환에서 시작해, 관의 단속을 거치고도 살아남아 결국 인정받았고, 이동 상인의 동선에 맞춰 닷새라는 독특한 주기를 갖게 됐다. 그 리듬을 따라 물건과 소식을 실어 나른 보부상 덕분에 오일장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생활의 통로로 자리를 굳혔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자리 잡은 시장이 왜 하필 그 자리, 그 마을에 서게 됐는지를 살펴본다. 나루터와 길목, 여러 마을이 만나는 지점에 시장이 들어선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오일장의 역사가 한층 입체적으로 그려질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오일장은 지금도 전국에 남아 있나요?
네, 지역에 따라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전히 정해진 날짜에 장이 서는 오일장 형태가 전국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예전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지역 생활권에서 나름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오일장과 상설시장은 무엇이 다른가요?
오일장은 정해진 날짜에만 열리는 정기시인 반면, 상설시장은 매일 문을 여는 시장을 말합니다. 오일장이 먼저 자리 잡은 뒤, 상권이 커지면서 일부 지역이 상설시장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Q. 보부상은 오일장에서만 활동했나요?
오일장이 주된 활동 무대였지만, 보부상은 장이 서지 않는 날에도 마을과 마을을 오가며 물건을 옮기거나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오일장의 순환 일정은 이들의 이동 경로를 짜는 기준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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